신•구약 중간기의 골자는 다니엘서 7장에 예언되어 있다. 여기서는 조금 더 자세히 간추린 역사를 기록한다.
페르시아 제국(BC 539-333)
앗수르(BC 750-612[138년])와 바벨론(BC 612-539[73년])에 이어 페르시아(바사 BC 539-333[206년])가 세계 역사를 주도한다.
* 다리우스(다리오) 1세가 그리스와의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후 사망하고, 그의 아들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가 그리스와의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한 이후 쇠퇴기를 맞는다.
* 결국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에게 두로를 점령당하면서 패권을 넘겨주게 되고, 알렉산더가 그리스 문명을 받아들이면서 힘을 키워나간다.
헬라제국(마케도니아)
(BC 359-323[36년])
* 마케도니아의 빌립보 2세가 금광을 발견하고 엄청난 재력을 얻게 되면서 그곳 이름을 자기 이름을 따 빌립보[행16:14]라고 부른다.
* 재력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키워 자기들을 얕잡아 보던 그리스를 점령한다.
* 빌립보 2세가 암살당하자 21살의 젊은 아들이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는데 이 왕이 바로 알렉산더다. 알렉산더는 십여 년의 짧은 기간에 엄청나게 영토를 확장하며 국제사회의 패권을 잡지만 제국의 역사는 상대적으로 짧았다.
* BC 334년 페르시아의 총독들을 물리치고 이어 이집트를 치러 내려오다가 먼저 난공불락의 두로성을 공격한 다.(에스겔 28:1-10에 두로의 멸망이 예언되어 있다.)
* 여세를 몰아 이집트를 정복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알렉산드리아라는 도시를 세운다. 그리고 점령하는 곳마다 그리스 문화로 개화시킨다.
* 고대 동방의 문명을 오리엔트 문명이라고 하는데, 알렉산더는 이 오리엔트 문명과 그리스 문명을 합쳐 헬라문명이라고 했다.
* 이집트 점령 후 가나안 땅을 지나 수산성(페르시아의 수도)을 점령한다.
* BC 326년에는 인도의 인더스강까지 진군했으나, 지친 군인들이 더 진군하는 것에 불복해 할 수 없이 회군한다.
* BC 323년에 아라비아 원정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병에 걸려 알렉산더는 33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알렉산더 사망 후 헬라제국의 분열
1) 알렉산더의 이복동생인 카산드 장군 :그리스와 마케도니아 본토.
2) 미시마코스 장군 : 소아시아 근방.
3) 셀루커스 장군 : 메소포타미아 유역의 시리아 지방.
4) 프톨레미 장군 : 나일강 유역의 이집트 지방. 이 네 나라 중 이스라엘과 관련이 있는 나라는 셀루커스 왕조와 프톨레미 왕조다.
* 이 두 왕조는 처음에는 사이가 좋았으나, 두 나라가 접해 있는 팔레스틴 지역을 사이에 두고 대립하게 되고, 마침내 BC 301년 프톨레미 1세에 의해 팔레스타인이 이집트에 합병된다.
셀루커스 왕조 (BC 312-164[148년])
셀루커스 1세, 31년 재위(다니엘 11:5)
안티오커스 1세, 18년 재위
안티오커스 2세, 15년 재위(다니엘 11:6)
셀루커스 2세, 21년 재위(다니엘 11:7-9)
셀루커스 3세, 2년 재위(다니엘 11:10)
안티오커스 3세, 36년 재위(다니엘 11:10-19)
셀루커스 4세, 12년 재위(다니엘 11:20)
안티오커스 4세, 11년 재위(다니엘 11:21-45)
* 셀루커스 왕조는 사실상 알렉산더의 후예로서 동서양 문화 교류에 큰 역할을 감당한다.
* 안티오커스 3세가 BC 199년 가이사랴 빌립보 근처에서 이집트를 물리치고 팔레스틴을 점령한 후, 프톨레미 왕조로 부터 정권을 인수받아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팔레스틴을 직접 통치한다.
* 이전의 프톨레미 왕조는 유대인의 종교적인 신념과 관습에 호의적이었으나, 셀루커스 왕조는 유대인에게 강압적으로 헬라 문화를 접목시킨다.
* 특히 안티오쿠스 4세(에피파네스)가친 헬라파 대제사장을 내세워 무자비하게 유대교를 탄압하며 예루살렘에 경기장을 세우고 이름도 헬라식으로 바꾼다. 심지어 안식일에 시리아 대군을 예루살렘에 투입해 유대 정통 세력들을 학살하고 성벽을 파괴한다.
* 더 나아가 성전을 약탈하고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 피로 제사를 지내게 하며 할례를 금한다.
* 이를 계기로 정통 유대인들이 신앙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일까지 일어나게 되고, 이것을 빌미로 BC 167년 헬라 문화에 동조하라는 포고령을 내린다. 그러자 유대인 제사장 맛타디아스와 그의 아들 마카비에 의해 본격적인 반란이 시작 된다.
* 이렇게 안티오쿠스가 이집트 정복 의지를 불태우고 있을 때, 로마가 이미 이집트에 손을 뻗치고 있었다.
발흥하는 로마
* BC 732년에 탄생한 로마는 왕정 시대와 공화정 시대를 거치면서 BC 264년 카르타고와의 세 차례에 걸친 포에니 전쟁에서 모두 승리하며 지중해의 패권국가로 등장한다. 막대한 부와 해상력을 갖춘 로마는 이후 헬라제국이 정복한 땅을 포함해 대제국을 건설한다.
* 드디어 로마가 프톨레미 왕조가 다스리는 이집트를 점령하기 위해 많은 군함을 이끌고 출전한다.
* 이때 셀루커스 왕조의 안티오커스 4세도 이집트를 정복하려고 군대를 이끌고 진군한다.
* 로마의 장군이 안티오커스 4세를 세워놓고 부하를 시켜 주위에 둥근 원을 그리게 한다.
* 그리고“그 원에서 나오기 전에 로마와 싸울 것인지 아니면 그냥 돌아갈 것인지”를 결정하라고 협박한다. 자존심은 상하지만 눈앞에 전개되어있는 함대들을 보고 퇴각을 결정한다.
*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유대인들이 헬라사상 수용을 거부해 뭉치지 못해 이런 수모를 당하게 되었다며 책임을 유대인들에게 돌리고 가나안에 들어가 학살극을 벌인다.
* 경건한 유대인과 제사장 650명을 불러 눕혀놓고 마차로 깔아 죽이고 도시를 약탈하며 시민들을 학살한다.
* 안식일, 할례, 제사, 율법책을 폐지하고 성전에서 돼지를 잡아 돼지 피가 흘러나오게 한다.
마카비 혁명과 하스몬 왕조
박해에 대응하는 네 종류의 유대인
1) 사두개인(솔로몬 시대에 제사장이었던 사독의 후예들) : 현실을 인정하고 수용과 타협으로 대처해 그들에게 어느 정도의 권력이 주어짐.
2) 하시딤 : 절대로 헬레니즘을 수용할 수 없다며 목숨을 걸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자는 주의. 이들 가운데서 바리새인이 나옴.
3) 엣세네파 : 하시딤 중에서 현실을 등지고 먼 사해 쪽으로 이주.
4) 젤롯당 : 하시딤 중 극단주의자. 무력을 써서라도 헬라인들을 몰아내자고 주장.
* 모렛 이라는 작은 마을의 제사장 맛다디아가 이방 제단에 제사를 드리라는 요구를 거절한다. 그런데 같은 마을의 한 사람이 헬라 관리의 강요에 못이겨 제사를 드리려고 하자 맛다디아가 그 유대인과 헬라 관리들을 죽인다.
* 이 일을 계기로 맛다디아와 그의 다섯 아들과 추종자들이 산으로 은신해 게릴라전을 전개한다.(이방 제단을 허물고 할례를 행하며 모세 율법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준다.)
* 약 1년 후인 BC 166년 맛다디아의 셋째 아들인 유다(별명이 망치라는 뜻의‘마카베오’)에게 지휘권이 넘어가고, 그가 연전연승하자 안식일에 공격을 멈추었다가 패한 이후 안식일에도 싸운다.
* 그러던 중 시리아의 리시아스라는 장군이 대군을 이끌고 마카베오를 치러오다가 안티오커스가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마카베오와 협상 한다. 첫째 성전을 정결케 해 원래 목적대로 사용하고, 둘째 유대인들이 100% 종교의 자유를 누릴 수 있도록 약속한다.(BC165년). 이 날을 기념하기 위해 지키는 날이 요한복음 10:22의 수전(하누카)절이다.
* 이렇게 마카베오가 시리아 세력을 물리치고 하스몬 왕가를 세워 BC 142년부터 BC 63년까지 79년 동안 독립 왕조를 이룬다.
* 하스몬 왕조가 50년쯤 지났을 때 헬라사상을 받아들이자는 사두개파와 그걸 못마땅하게 여기는 바리새파 간에 큰 충돌이 일어나고, 끝내는 열세였던 바리새파가 셀루커스 왕조에 도움을 요청한다.
* 그런데 막상 셀루커스 군대가 원군으로 내려오자, 이러다가 사두개인들을 몰아낼 수 있을지는 몰라도, 나라가 완전히 점령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두 파가 다시 힘을 합치게 된다.
* 그러나 세월이 좀 지나, 앙심을 품은 사두개파 사람들이 잔치를 벌여놓고 바리새파 사람들을 초청한 후, 그 자리에서 바리새파 지도자들을 숙청한다. 이 일로 인해 두 파당 사이에 뿌리 깊은 불신의 골이 깊어진다.
로마의 통치(BC 63년)
* 이러는 사이에 로마의 폼페이우스 장군이 주변국들을 하나하나 점령해가며, 쇠퇴해가는 셀루커스 왕조를 쓸어버릴 계획을 세운다.
* BC 63년경 폼페이우스 장군이 유대의 두 파간의 분쟁을 말린다는 명목으로 군대를 이끌고 예루살렘성으로 진군한다.
* 석 달 동안 성을 포위하고 있다가 성벽에 구멍을 뚫고 들어가 성을 점령한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을 비롯한 가나안 땅이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들어가게 된다.
* 로마 안에서도 변화가 일어난다. BC 60년 경 율리우스 카이사르라는 사람이 등장해 원로원 제도를 흔들기 시작한다. 이 제도로는 대제국을 유지⦁발전시킬 수 없다며 황제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 그러나 당시 권력을 행사하던 키케로 같은 원로원 의원들이 이 주장을 경계하며 수용하지 않는다.
* 이때 카이사르가 자신과 폼페이우스와 크라수스를 묶어 제 1차 삼두정치를 이끌어내고 로마를 세 사람이 통치하게 된다.
* 그러나 카이사르가 브루투스에게 살해당한다. 그 유명한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말을 남기고...
* 그 후 카이사르의 양아들인 옥타비아누스가 로마의 황제로 등극한다.
* 그 어간에 이두메(에돔)인들이 끼어들어 식민지에서 지분을 얻어내려고 애쓴다. 예전에 느헤미야와 에스라 시대에도 도비야와 산발랏 같은 에돔인들이 페르시아 제국과 손잡고 총독 노릇을 하며 유대인들의 일에 끼어들곤 했다.
* 이때도 에돔인 가운데 헤롯이라는 자가 옥타비아누스 황제를 찾아가 술수와 아첨으로 분봉왕이라는 칭호를 받아낸다.
* 로마는 식민지에 로마 총독을 파견하거나 제국에 충성도가 높은 분봉왕을 세워 다스렸다. 이런 제도를 이용해 에돔 사람인 헤롯이 유대인의 왕 노릇을 하게 된다.
* 당연히 유대인들에게는 헤롯이 왕으로 보일 리 없었다.
* 헤롯은 강경책과 유화정책을 병행했고 유화정책의 일환으로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지어주었다. 헤롯 성전은 BC 19년 경 착공해 외형은 약 9년 걸려 완성했으나, 그가 죽은 BC 4년 이후에도 공사가 계속되어 AD 63년경 헤롯의 증손자 아그리파 2세가 완공했다. 그러나 AD 70년, 로마의 티투스 장군이 이끄는 로마 군대가 침략해 성전에 불을 질렀고, 화재로 성전에 있던 금들이 녹아 돌 사이로 스며들자, 병사들이 이 금을 찾기 위해 돌을 다 무너뜨려, 예수님의 예언대로[마 24:2, 막 13:2]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다 무너졌다.
* 이렇게 계속 다른 나라의 지배와 억압을 받으며 살아가는 유대인들에게 자연히 “구원”에 대한 열망이 생기게 되었고, 오래 전 그들의 조상이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다가 구원되었던 것처럼, 그들도 구원자인 메시야 사상을 갖게 되었다. 다윗과 같은 구원자가 나타나 로마를 물리치고 다윗 시대의 영광을 재현할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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